[서평] 행운에 속지 마라(Fooled By Randomness) - 노이즈가 넘치는 시장에서 리스크 헷징은 필수!

행운에 속지 마라

오늘 리뷰할 책은 2001년에 출간된 니콜라스 탈렙의 [행운에 속지 마라]라는 책입니다. 요즘처럼 갈수록 연봉과 자산 수준의 격차가 벌어지며 승자독식의 경향성이 강해지고 있는 시대에 개인이 어떤 마인드로 투자하고 소신있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함의하는 바가 큰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투자 방법론을 거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투자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건전한 투자 마인드를 형성하기에도 좋은 책이구요.

저자 소개를 잠깐 하자면, 니콜라스 탈렙은 세상에 대한 특유의 비관주의적이고 신랄한(sarcastic) 관점으로 유명한 미국의 유명한 레바논계 퀀트 트레이더입니다. 실제로 니콜라스 탈렙은 이런 비관주의적 투자 전략으로 1987년에 일어난 블랙 먼데이 당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2000년의 닷컴 버블과 2007년의 금융위기에도 성공적인 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아마 수차례의 위기에서 돈을 벌어들였던 이런 탈렙의 경험이 탈렙에게 세상에 대해 회의론적인 관점을 견지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탈렙은 [행운에 속지 마라] 이외에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을 정리하여 [블랙 스완(The Black Swan)]과 [안티프래질(Antifragile)]라는 책들을 썼는데, 이 중에서 2007년에 출판된 [블랙 스완]은 2007년에 마침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주목받으면서 금융투자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분야 전반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니콜라스 탈렙이 이 책에서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대부분의 좋은 성과는 실력이 아닌 행운 덕분이다"라는 것입니다. 책의 1부에 실제로 시기를 잘 탄 덕분에 승승장구하던 트레이더들이 특이 사건(블랙 스완)이 발생하면서 한순간에 몰락하는 사례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카를로스는 적기에 그 시장을 담당한 덕분에, 시장이 융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중략) ... 이런 행운의 반전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자신은 타고난 경제적 직관력 덕분에 트레이딩 판단이 뛰어나다고 믿었다... (중략) ... 돈 많은 신흥시장 트레이더들로부터 수없이 굴욕을 당했던 이웃 부서의 노련한 트레이더 루이는 명예를 회복했다... (중략)... 생포된 병사가 투기장으로 끌려가듯 경비원에 둘러싸여 문으로 향하는 카를로스를 그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는 운 좋은 트레이더들의 단기적 승리를 다윈의 진화론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압축합니다.
"진화는 시계열의 한 시점에 적합하다는 뜻이지, 모든 환경에 평균적으로 적합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주식시장의 소위 요즘 잘나간다는 주식투자자들의 투자 전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입니다. 많은 경우 그 사람들이 성공한 이유는 그 사람들이 취한 전략이 그 시기와 우연히 상성이 좋았기 때문이고, 조금만 상황이 달랐더라도 성공한 투자자들의 명단은 지금과는 전혀 딴판이었을 것입니다.(책에서는 이것을 대체역사라고 표현합니다) 특히 특정 종목에 대한 몰빵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사례의 경우에는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으로 인해 우연히 발생한 사례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존 편향의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 중의 미군 전투기 보강 사례.
굉장히 유용한 사례이므로 관련 글을 일독할 것을 추천한다.

문제는 데이터 분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투자자일수록 이런 생존 편향에 더 취약해진다는 점입니다.(2부의 중심 내용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익을 낼 확률이 1/3인 무능한 펀드매니저들만 모아두고 3년간의 실적을 살펴보는 실험을 해본다고 해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평균적으로 펀드매니저의 1/27 정도는 실력과 관계없이 매년 이익을 내게 됩니다. 펀드매니저가 충분히 많다면 그중 몇명 정도는 실력이 형편없어도 3년동안 꾸준히 수익을 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런 펀드매니저들에게 내 돈을 맡긴다면 손해를 볼 확률이 2/3이나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펀드매니저의 과거 실적만을 토대로 이 사람이 실력있는 투자자인지/아닌지를 판별하는게 맞는 걸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죠.

자연과학에서 하는 실험이었다면 이 펀드매니저들을 잘 설계된 실험실에 다시 넣고 투자를 충분히 많은 횟수동안 반복하라고 하면 어느 펀드매니저가 진짜 실력으로 살아남은 건지를 검증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저런 방법을 취하는 건 불가능하죠. 재현 실험이 불가능한 이상, 결국 데이터 분석을 아무리 해봤자 사후적인 해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채로 조용히 묻히게 되는거죠. 비슷한 이유로, 나심 탈레브는 펀드매니저의 실적 뿐만이 아니라 기업이 여러 해동안 꾸준히 성과를 올린 경우에도 단순히 운 덕분에 그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2부의 내용은 "사후적인 데이터 분석에는 운에 따른 노이즈가 지나치게 많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관관계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위에서 살펴본 펀드매니저에 대한 생존편향 실험처럼 운에 의해 좌우되는 단순 노이즈라는 것이지요.

저는 업무상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을 자주 하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시각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머신러닝 모델을 만들면서 인과관계와 관계없는 단순 노이즈 때문에 모델이 오버피팅(overfitting)되고 테스팅 환경에서 제대로 성능을 못내는 경우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에, 나심 탈레브가 추구하는 방향이 숫자를 쓰지 않더라도 공학적으로 더 제대로 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운에 따른 노이즈를 제거"하고 정말 중요한 신호만 필터링해내는 것이 깊은 고려 없이 화려한 수식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보다 공학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거죠.

결론적으로 보면,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투자 시장에서는 성공도 리스크도 자신의 실력보다는 운이 크게 좌우한다는 회의적 관점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반드시 리스크 헷징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심 탈레브는 리스크 헷징을 넘어서서 위기를 지렛대로 돈을 벌기까지 했죠. 거기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상황이 자기 생각대로 안돌아갈 경우에 대비한 plan B, C 정도는 항상 준비해두고 투자에 뛰어든다면, 예기치 못한 블랙 스완에도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자신의 자산과 생활을 지켜나갈 수 있는 안전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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