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로 살아남기 - 피터 린치의 [월가의 영웅]을 읽고서 (1)
주식시장은 정말로 개미의 무덤인가?
주식 투자를 할때 개인과 기관 중 과연 어느 쪽이 유리할까?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90%는 기관이라는 답이 나온다. 잘 모르고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가 원금이 반토막났다는 사례는 너무 흔해서 감흥이 없을 정도고, 데이터도 이런 사람들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듯 하다. 실제로 2017년 기준으로 개미들이 자주 매매했던 상위 30개 종목의 수익률은 10년 기준 -74%였고, 기관이 자주 매매했던 30개 종목에서는 9%였다고 한다[관련기사]. 이 정도면 주식은 개미들에게는 그야말로 개미지옥이고, 기관투자자들만이 승리할 수 있는 그들만의 잔치로 보인다.
하지만 [월가의 영웅]의 저자인 피터 린치는 오히려 개인투자자들이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우선 피터 린치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알아보자.
피터 린치는 누구인가?
피터 린치는 사실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아서인지 워렌 버핏, 존 템플턴, 조지 소로스 등에 비해서 일반인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있지는 않다. 피터 린치는 Fidelity Investments(피델리티 자산운용)에서 1977년부터 1990년까지 마젤란 펀드[1]라는 뮤추얼 펀드의 펀드매니저로 13년간 일하면서 연 평균 29.2%(!!!)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덕분에 그가 운용했던 마젤란 펀드의 운용 자산(Assets Under Management)은 1977년 1800만 달러에서 1990년 140억달러로 급상승했고, 마젤란펀드는 2003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장기수익률(20년 기준)이 높은 뮤추얼펀드가 되었다. 피터 린치의 자산은 2003년 기준으로 무려 3억 5천만 달러에 달했고 말이다.
개인투자자 vs 기관투자자
개인투자자가 기관투자자보다 유리한 점
그러면 베테랑 투자자인 피터 린치가 개인투자자가 기관투자자에 비해 유리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개인투자자에게는 투자기관이 가지는 구조적인 한계가 없어서 유연하게 알짜 종목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터 린치는 워렌 버핏처럼 소수의 초우량주를 사서 존버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면서 알짜 종목을 쓸어담고 처분하는 액티브한 투자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피터 린치는 [월가의 영웅]에서 기관투자자들이 가지는 구조적인 한계를 여럿 지적했는데, 필자가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내용과 조금 짬뽕해보면 다음과 같다.- 펀드매니저의 개인의 인센티브 구조가 알짜 종목 투자에 불리하다.
- 남들이 잘 모르는 소위 알짜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리면 고객과 상사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다.(해고 통보는 덤) 반면 남들이 다 아는 유명한 종목에 투자하면 돈을 날려도 변명할 구실이 있고, 잘되면 무난하게 수익을 챙길 수 있다. 펀드매니저들도 직장인인 이상 이런 리스크는 당연히 피하기 마련이다.
- 알짜 종목에서 수익을 보려면 해당 종목의 턴어라운드를 맞이하는 시점까지 존버할 필요가 있는데, 분기/연 단위로 실적을 내야 하는 회사가 많아서 장기 투자가 어렵다. 시장 대비 실적이 안좋으면 당장 상사나 고객에게 쪼이는게 현실이다.
- 투자기관의 시스템이 경직되어 있어서 매니저가 소신대로 투자하기 어렵다.
- 기관은 투자종목 선정과 해당 종목의 포트폴리오내 비중 설정을 보수적으로 하는 편이라서 숨겨진 알짜 종목을 발굴하더라도 실제로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기관과 애널리스트가 알짜 종목의 투자 적합성을 인정하거나 알짜 종목이 시장을 한바탕 휩쓸고 나서야 뒷북으로 뛰어드는게 기관들의 현실이다.
- 시장이 안좋으면 사람들은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펀드나 투자 자산에서 돈을 빼버린다. 이 경우 매니저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종목을 처분하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
- 현장에서 직접 유용한 정보를 획득하지 않고 책상머리에서만 운용을 하는 매니저들이 많다.
예전에 읽은 워렌 버핏의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에 대해서 언급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약하자면, 개인투자자들은 기관투자가들 대비 다음과 같은 장점들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 자신이 전문가인 분야의 종목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 주방용품을 자주 구매하는 사람이라면 전자레인지나 도마살균기를 만드는 기업 중에서 가장 좋은 종목을 골라낼 수 있다.
- 의사라면 제약/의료기기 종목에 대해 남들보다 더 잘 안다.
- 투자종목 선정과 포트폴리오 내 비중 설정이 자유롭다.
- 내가 무슨 종목을 얼마나 사든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다.(
물론 주식을 혐오하는 가족이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기관투자자가 개인투자자보다 유리한 점
반대로 기관투자자들이 개인투자자 대비 가지는 장점도 있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진 않은 내용이지만, 개인만이 가지는 장점을 살리려면 한번 짚고 넘어갈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획득할 수 있는 소위 고급 정보가 평범한 개인보다는 많다.
- 기관의 높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개인보다 더 광범위한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선물 옵션같은 레버리지가 높은 투자나 기업 M&A 시장, 채권 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 전업으로 투자를 하다보니 개인보다 금융지식 수준이 높다.
So What?
그러면 이론상으로는 개인투자자가 자신만의 edge를 잘 살려서 투자하면 개인투자자가 보다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개인이 기관 대비 가지는 장점들이 애초에 금융지식과 개별종목에 대한 깊은 리서치가 없으면 살리기 어려운 장점들이라는 부분이다.그러나 자신이 투자하는 종목에 대해 제대로 된 리서치를 해가면서 투자하는 개미들은 사실 거의 없다. 단순히 투자기관의 권유를 받아서, 혹은 소위 고급정보라는 증권가 찌라시를 듣고, 혹은 최근에 엄청나게 주가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재무재표와 향후 성장성에 대한 제대로 된 체크없이 종목을 매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개미들의 경우에는 해당 상품의 수익 구조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투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개인 수익률 -74%가 찍힌 건 이런 부분 때문이다. 애초에 투자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만의 장점을 살리기는 고사하고 기관투자자들의 사냥감이 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투자 상의 제도적인 제약이 많다고는 해도 기관은 개인에 비해 축적한 금융 지식과 자금력, 그리고 획득하는 정보와 이용 가능한 금융상품의 범위가 평범한 개인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
쉽게 말해, 주식시장이 개미지옥이 된 것은 개인투자자들이 충분히 공부를 안하고 뛰어든 탓에 기관투자가들이 우위를 점하는 필드에서 싸우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불리한 상황에서 투자를 하는데 개인이 기관투자자를 어떻게 능가하겠는가? 자기만의 비교우위가 없는 상황에서 싸우는 건 주식투자에서는 물론이고 사업에서나 일상생활에서도 당연히 금기이다.
[이런 상황은 무조건 피하자...]
[월가의 영웅]을 읽어보면 피터 린치는 애초에 자신이 기관투자자기는 했지만 나름대로는 소신껏 투자를 했다.(책을 보면 상사가 자율권을 많이 줬다는 언급이 나온다) 덕분에 기관투자자임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된 개인투자자만의 장점을 잘 살려서 높은 수익률을 장기간 찍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피터 린치가 어떤 방식으로 투자 종목을 선정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했기에 개인투자자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었는지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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